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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여름의 풍경

(이규민 / 임지훈, 서울시립대학교 조경설계연구실)

이번 2025년 여름, 서울시립대학교 조경설계연구실에서 뜨거운 햇살을 뚫고 충북 괴산으로 향했습니다. 계절은 어느덧 바뀌었지만, 그날의 길 위에서 마주했던 배움의 기억을 되살려 늦게나마 답사 전반에 대한 기행문을 기록합니다.

유구한 시간이 쌓인 화양구곡을 시작으로, 농촌의 새로운 가능성을 일구는 ‘뭐하농 하우스’, 그리고 오래된 공간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은 충주 성내동 구도심까지. 같은 길을 걸었음에도 저마다의 시선으로 장소를 해석한 두 연구원의 기록을 통해, 이번 여름에 마주했던 풍경을 다시 펼쳐 보입니다.


[View 1]
보이는 것 너머의 것
(이규민)

경관(景觀)이란 기후·지형·토양 따위의 자연적 요소에 대하여 인간의 활동이 작용하여 만들어 낸 지역의 통일된 특성을 의미하며, 일반적으로 산·강·건물·도시와 같은 물리적 장면이나 풍경을 이른다. 그러나 공간을 마주할 때마다 경관이 단순한 장면 이상의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는 장소마다의 인상이 ‘보이는 것’에만 머무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끼리 오가는 이야기와 주변에 흐르는 분위기같이 도면에 담을 수는 없지만 때로는 자연이나 형태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요소들이 있다. 이번 MT는 바로 그런 ‘보이지 않는 것’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경험들의 연속이었다.

화양구곡 답사를 진행한 첫날 일정을 마무리하고, 둘째 날에 마주한 곳은 ‘뭐하농 하우스’였다. ‘졸업한 선배가 운영하는 귀농인의 아이코닉한 농업 공간’이라는 대략적 설명만 듣고 향한 곳이었다. 예상과 달리 실제로 마주한 장소는 상상했던 것과 비교해 상당히 다른 모습의 공간이었다. 일반적인 농업 시설과 달리 감각적인 디자인과 공간 전반에 흐르는 독특한 분위기는 이곳이 일반적이지 않은 장소임을 직감하게 하였다. 축사와 비닐하우스를 매력적으로 활용한 물리적 공간은 디자이너만의 감성을 내뿜고 있었다. 내부 공간을 직접 구성해 보는 시간을 통하여 내부를 살펴보며 공간이 그리 쉽게 만들어진 것은 아니겠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여기저기 보이는 축적된 고민의 흔적들은 공간을 꾸려 온 시간과 쌓아온 경험, 그리고 공동체를 향한 자부심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를 통해 ‘뭐하농 하우스’는 귀농인의 ‘농업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라는 질문 끝에 만들어낸 선배만의 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

우리가 방문한 ‘뭐하농 하우스’는 귀농 이후 표고버섯 농사를 시작으로 하여 지역 활동에 뛰어든 선배가 만들어낸 ‘농촌 복합문화공간’이였다. ‘뭐하농’은 지역의 청년회 활동과 농업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정부의 귀농사업까지 참여했으며, 이후 괴산에서 진행한 ‘청년마을 만들기’ 프로그램을 통해 도시 청년들과 농촌을 연결하며 커뮤니티를 확장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오늘날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뭐하농 하우스’만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단순한 시설과 조직을 뛰어넘어 농업을 매개로 사람과 관계를 이어가는 커뮤니티의 장으로 기능토록 한다는 점이었다. ‘뭐하농’은 여러 방식을 통하여 농업과 참여자들 간의 상호작용이 결합된 ‘멤버십 형태의 지속 가능한 네트워크’를 이뤄냈다. ‘뭐하농’은 프로젝트가 확장되면서 이외의 공간 활용이나 조경 프로젝트까지 진행하였으며, 굿즈 사업이나 커뮤니태 행사 개최와 같은 다방면에서의 활동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은 결국 농업과 사람이 연결되는 관계의 경관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

‘뭐하농 하우스’가 제시한 공동체의 힘은, 농업을 바탕으로 하여 사람과 장소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 하였다. 이는 단순히 공간의 구성에서 비롯된 인상이 아니었다. 이것은 공간 위에서 형성되는 관계와 태도, 그리고 그로부터 흘러나오는 분위기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커뮤니티 행사에서부터 결혼식까지 이뤄지는 모습은 특정한 장면으로 규정되기보다는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와 시간이 쌓이며 만들어진 ‘뭐하농’만의 경관으로 다가왔다. 뭐하농의 모습은 그동안 경관을 ‘보여지는 물리적 실체’ 중심으로 인식해왔던 나에게 비가시적인 경관에 대한 시야를 확장시켜주는 기회가 되었다. 나는 이번 경험을 통하여 “경관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고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셋째 날에는 충주시 성내동 구도심을 답사하였다. 이곳에서는 다른 졸업 선배의 소개를 통하여, 구도심 공간을 재해석한 프로젝트를 보게 되었다. 50년이 넘은 염소탕집을 재활용하여 만든 ‘고티멘숀’을 중심으로 한 성내동 구도심은 몰락해가는 공간을 재활성화시킨 우수 사례였다. 이 공간의 구성원인 청년 사업체들은 음식점에서부터 공방까지 다양한 상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들의 활동은 방문하기 꺼려지는 공간을 매력 넘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변모시켰다. 시간의 흐름을 담은 건물 외관과 주인의 손길이 묻어있는 내부 인테리어가 어우러진 모습은 공간이 오래된 기억과 새로운 감각이 공존하는 장소라는 인상을 주었다.

성내동 구도심이 인상적으로 느껴진 이유는 다양한 가게들이 연결되고 연계되어 있었다는 점에 있었다. 구도심 내에 자리잡은 점포들은 하나로 이어지는 흐름을 만들어내며 자연스럽게 다른 경험으로 이어졌다, 공간의 배치와 입주한 사업체들의 활동은 구도심을 다시 묶어내며 하나의 마을을 완성해냈다. 그들의 물리·비물리적 활동은 지역 사회와의 관계를 점진적으로 넓혀 가는 과정이었으며 결과적으로 새로운 경관을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하였다.

성내동 구도심을 구성하는 건물군은 겉보기에 오래된 공간을 단순히 리모델링한 복합문화공간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곳에 만들이전 풍경은 눈에 보이는 물리적 요소에 그치지 않았다. 여러 점포들이 만들어내는 열정적인 분위기와 방문객과 지역 주민 사이의 자연스러운 상호작용, 색다르면서도 연속성을 느끼게 하는 공간구성은 공간 전체를 매력적이게 만들고 있었다. 해당 장소에서 이뤄졌던 ‘음식점에서 나누는 대화, 카페에서 함께 케이크를 고르는 순간, 공방에서 보여지는 관심의 손길과 고민의 눈빛’ 같은 경험들은 이 장소를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핵심적인 요소가 되었다. 이러한 경험과 기억은 합쳐져 하나의 경관이 되었고 기억에 남게 되었다. 나는 이러한 과정을 경험해보며 “다양한 비가시적 활동이 경관구성의 핵심요소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번 MT를 통하여 ‘경관은 단순한 물리적 범주를 넘어서며 사람과 관계 등이 시간이 쌓이며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었다. 나는 뭐하농 하우스와 성내동을 답사하면서 사람 사이에 흐르는 공기와 대화 속 분위기, 공간에서 오가는 작은 행동들 모두가 공간의 기억에 영향을 끼치며 보이지 않는 경관 요소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었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경관 구성 요소들은 결코 도면에 그려질 수 없다. 그러나 공간을 경험하는 사람에게는 강력한 인상으로 남을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경관을 만드는 행위’는 어찌 보면 어떤 장면을 연출하기보다 어떤 관계와 시간을 품을지 기획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는 것을 만드는 것 이상으로 그 공간에 어떤 사람들이 어떤 행위를 하며 어떤 기억이 축적될지 바래보고 기획하며 실천해나가는 것’이 생각보다 더욱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선배의 말 중 “교수님과 후배들을 이곳에 모시고 싶었습니다. 지금이 마치 꿈 같습니다.”라는 말씀이 있었다. 선배의 말에는 오랜 시간과 정성이 쌓여 만들어진 ‘자신이 만들어낸 경관’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바램이 녹아있었다. 그 바램은 결국 경관을 기억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로 머릿속에 남아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사람들 사이에서 피어나는 특정 순간을 바라는 그 마음’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진정한 경관 구성에 지향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View 2]
화양구곡, 스쳐지나가는 경관
(임지훈)

학·석사 연계 과정으로 설계연구실에 지원하며, 번듯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전에 MT에 참여하게 됐다. 그래도 최소한 밥값은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월간테라에 글쓰기를 지원했다. 이미 조경인으로 활동하고 계신 선배들의 빼어난 글을 보니 적잖은 부담이 생긴다. 젊어서는 몰라서 무턱대고 나서도 좋게 봐주시니, 조금 뻔뻔하게 글을 쓴다. 초고를 쓸 당시에는 화양구곡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뤘는데, 그 사이에 몇몇 문화재를 답사하기도 했고, 종묘 앞의 개발 문제가 가시화되며, 당시 가졌던 문제의식들이 이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화양구곡을 방문했을 때, 3가지 정도가 기억에 남는다. 1) 날씨가 참 더워서 계곡물이 뜨뜻미지근했다 2) 사진보다 실제 경관이 훨씬 깊이가 있었다. 3) 그런 와중에 능운대는 사진과 큰 차이가 없었다. 제5곡 첨성대는 산 능선 위로 툭 튀어나온 괴석의 멋이 있었고, 제1곡 경천벽은 스케일에서 오는 웅장함과 수직절리가 눈에 띄었다. 그런데, 능운대는 가까이서 본 탓일까, 무척 아담해 보였다. 전선들은 아기방 장식처럼 늘어져 바위를 가로질렀고, 구름을 찌를듯한 높은 봉우리 위로 나무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능운대(凌雲臺)는 구름을 뚫고 오르는 큰 포부를 상징한다는데, 선비들의 옛 포부는 오늘날 자연에 묻혀 빛을 잃었나 보다. 적어도 수암 권상하가 본 능운대의 모습이 지금과 같았다면, 능운대라는 이름을 붙이진 않았을 것이다. 능운대 주변 식생은 소나무 군락이 주를 이뤘으나, 식생 피도 증가와 외래종 유입 등 생태계 천이가 발생하여 과거와는 다른 경관을 가지게 됐다. 능운대와 인접하여 시야를 가로지르는 전선들은 덤이다.

경관의 변화가 과거와 현재가 다르기 때문에 자연스레 일어나는 일로 여긴다면, 능운대의 사례는 크게 문제 될 일은 아니다. 관리도 비용이고, 문화재 보존 이외에도 급한 현안은 넘쳐나니까. 다만 보존의 목적을 ‘과거의 좋은 경관을 유지하는 것’으로 본다면, 능운대는 적절히 보존되지 못한 사례가 된다. 그렇다면, 능운대 나아가 화양구곡을 적극적으로 보전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하나?는 의문이 생긴다.

아무래도 행정을 배우다 보니 이런 문제에 있어서 늘 비슷한 질문을 하게 된다. 무슨 근거로 관리가 행해져야 하고. 재원은 어디서 마련되며, 다른 사안보다 중요한가? 시행해서 얻는 편익은 얼마나 비용 대비 효과적인가? 그러다 보면, 수에 대한 공무원들의 집착도 이해가 간다. 보이는 숫자만큼 확실해 보이는 건 없으니까. 나쁜 것은 확실히 눈에 띄는데, 좋은 것은 쉽게 측정되지 않는다. 자연과 문화유산을 함께 즐기며 얻는 정신적 즐거움은 박람회 개최라던가, 저소득층 지원에 비해 측정이 어렵다. 이런 논리 아래서는, 문화재 보존은 뒷방 늙은이 신세를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숫자만큼 강력한 법이 있는 것 같다.

화양구곡은 「문화재보호법」 제25조에 따라 지정된 110호 명승이며, 현재는 「자연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 제3조에서는 기본 원칙으로 1. 인위적인 간섭을 최대한 배제하되, 자연적인 변화 등 자연유산의 고유한 특성을 반영할 것 2. 자연유산의 보존ㆍ관리는 지속 가능한 활용과 조화를 이룰 것 3. 국민의 재산권을 과도하게 제한하지 아니할 것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더불어 같은 법 제5조에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보존 관리 책임을 위임하고 있다. 즉 보존 관리의 구체적인 지침은 지자체의 의지 혹은 정책적인 우선순위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괴산군이 관리를 미비하게 했다고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부지 내에는 여관이 있었고, 전기를 끌어 쓸 줄은 당연히 필요하다. 다만, 전깃줄이 경관을 가리지 않게 지나가도록 조치할 의향이 없었을 뿐이다.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처지에서는 설계에서 세심함이 부족했다고 느껴진다. 이 지점에서 아쉬움보다는 호기심이 생겼다. 왜 공무원들이 그런 노력을 기울일 필요를 느끼지 못했는가?

사견으로는 화양구곡이 오늘날 공을 들일 가치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 아닐까. 화양구곡의 입지나 주변 풍광은 무척 아름다웠고, 인상 깊은 경관들이다. 길을 걸으며, 스쳐 지나가듯이 소비되는 배경. 빼어난 경관이지만 딱 그 정도였다. 경관의 가치를 제하면, 화양구곡이 국가에서 지정한 명승 이외의 가치가 있었나? 그런 의문을 품다 보면 오늘날의 화양구곡은 어떤 의미가 있고, 또 있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생긴다. 그러다 보니, 스치듯이 민음사 책들에 적힌 서문이 떠올랐다.

세대마다 문학의 고전은 새로 번역되어야 한다. (…) 엊그제의 괴테 번역이나 도스토예프스키 번역은 오늘의 감수성을 전율시키지도 감동시키지 못한다. 오늘에는 오늘의 젊은 독자들에게 호소하는 오늘의 번역이 필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민음사 일부 작품의 경우 번역 품질에 관한 논쟁이 많지만, 시대에 맞는 번역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충분히 납득가능하다. 이런 재해석은 비단 번역에 국한된 일은 아니다. 옛 것들이 빛을 보기 위해서 현대에 맞게 해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것이 번역이 되었든, 다른 매체이든 간에 그렇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화제가 된 사유의 방 전시는, 조명과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하여, 기존의 ‘사유’라는 주제 의식을 유지한 채로, 현대적인 방식으로 풀어냈다. 2023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아시아에서 방문객을 가장 많이 유치했고, 현재까지 유지 중이다. 근래에 들어 국중박의 폭발적인 인기는 단지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후광만으로 이뤄지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전시’가 과거에는 작품의 감상에서 그쳤지만, 현재는 관람이 참여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아트(Interactive Art)가 늘어나는 것도 일종의 오늘날에 맞추려는 노력처럼 보인다. 이런 노력은 전시나 미술에 그치지 않는다. 현재는 흔해진‘오픈 월드’라는 장르를 퍼트린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이란 게임이 있다. 기성 게임들은 정해진 스토리에 따라 선적으로 움직여야 하지만, 오픈월드 게임에서는 정해진 스토리 순서를 따르지 않고, 딴 길로 빠져도 좋도록 선택의 자유를 준다. 플레이어는 본인의 선택에 따라 스토리를 따라 쭉 플레이할 수도 있고, 하루 종일 딴짓만 할 수도 있다. 핵심은 ‘선택의 자유’보다는 메인스토리 외에도 부가적인 요소를 무척 흥미롭고, 딴 길로 무척 새기 좋도록 의도적인 ‘설계’를 한 것이다. 길을 가다가 길가의 보물 상자를 찾아서 따라가서 열었더니, 저 멀리 새로운 보물 상자가 또 보이고, 그런 식으로 무언가를 쫓다 보면 새로운 퍼즐이 나와서 풀도록 하는 그런 식이다. 결과적으로 젤다의 전설은 대흥행했고, 오픈 월드는 거의 모든 게임에 있어서, 너무 보편적인 장르로 자리 잡게 됐다.

화양구곡 자체가 좋은 명소를 짚어서 연결하듯 장소고, 외부 공간이라는 특성상 전시나 게임과의 비교가 불합리한 것은 안다. 하지만, 단순 문화재가 스쳐 지나가는 경관의 일부로만 소비된다면, 밝은 미래가 있을지 의문이다. 비단, 화양구곡뿐만 아니라 궁남지,공산성 등 문화재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늘날 조경도 눈에 보이는 경관이 여전히 무척 중요한 요소지만, ‘보는 것’ 이상을 만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문화재 또한 할머니 집에 있는 옛날 접시의 정도의 대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사람들을 매료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괴산군에서도 화양구곡을 단순 경관을 넘어서 체험과 교육의 공간으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화양선비문화체험단지 건립을 통해서, 스토리텔링형 콘텐츠 구성 및 장솔르 활용한 체험프로그램 개발을 도모했다. 또 뻔한 교육체험프로그램이냐는 비판도 맞는 말이지만, 시도 자체는 필요하다. 하지만, 해당 계획도 올해 재정부담가중, 관광트렌드 부적합 등의 이유로 취소되었다.새로 부임한 군수의 전임자 흔적 지우기라는 논쟁은 자처하더라도, 문화재가 당분간 옛 흔적 정도로만 남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화양구곡은 어떤 방식으로 현대에 맞게 재해석되어야 할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재번역의 방향도 학계, 지자체, 시민별로 다를 것이다. 학계는 학술적 보존을, 지자체는 경제, 관광 효과를 시민은 치유나 체험을 우선순위에 둘 가능성이 높다. 누군가는 디지털를 활용한 미디어화를 선호하고, 다른 사람은 문화체험이나 해설사를 원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는 현대인들의 욕망을 읽어내고, 구곡이 갖춘 잠재력과 결부시켜 이를 적절한 형식으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어쩌겠는가. 결국은 꾸준히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는 문화재의 미래를 위해서기도 하다. 도시화 과정에서 보존과 개발은 늘 충돌해 왔고, 서울처럼 발전된 도시일수록 이 둘은 치열하게 대립한다. 현재 종묘 재개발 추진 논란의 경우에도 필자의 기억상 세운상가 인근의 재정비지구로 지정했을 때는 조용했으나, 고도제한을 올리고, 서울시 조례 개정에 관해 대법원이 적법하다고 판정하며 논란이 시작되었다. 기존 서울시 문화재 보호 조례 제19조 제5항의 국가지정유산 외곽 경계로부터 100m 이내 지역에서의 공사를 규제한 부분을 삭제한 것이, 대법원에서 적법 판정을 받았고, 지금까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법안의 울타리가 내려가고, 문화재의 보존과 개발이 맞부딪힌 순간, 국내의 많은 문화재들은 살아남아 잘 보존될 수 있을까?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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